킬링타임 전시

환승연애2 17화까지 인물 감상

연애프로 관심없었는데 현규가 하도 화제고 유튜브나 커뮤니티에 계속 보이길래 봤다. 다들 분석놀이 하길래 나도 함. 큰 결에서는 비슷한 생각인데 조금 다른 것들. 주로 인상평이고 개별적인 행동들에 대한 인상은 시간나면 다른 글로 이어쓸 듯.

-- 현규

현규만큼 상황판단 빠르고 언행 잘 고르는 강렬한 남성 출연자는 동장르에서 앞으로도 보기 힘들 거라 생각. 외모 스펙 배제하고도 쉽지 않았던 후반부 등장 구도에서 해은을 어떻게 존중하면서 매순간 스윗하게 어필하는지만 지켜봐도 여초가 왜 현규때문에 뒤집어졌는지 알 수 있음. 15-16화 보면서 어이없을 정도로 난놈이 방송을 탔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사람 대할 때 머리 돌리는 강도에 비해서 퍽 상냥하고 저돌적인 순애를 해왔고 계산없는 사람에 이끌린다는 게 재미있었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깊고 행동에 계산이 많아서(타산적이라는 뜻이 아님, 극한의 J 성향) 그간의 연애가 이성적으로는 꽤 비대칭이었을 거라 짐작했음. 취향을 보니 그런 구도를 스스로도 선호하지 않나 싶고. 그런데 그거 좀 지치지 않나.
현규의 -이런 류의 사람들 특유의- 차분함 속 계획적인 사고회로가 인터뷰에서 꽤 날것으로 방송을 탄 게 재미있었음. 당사자가 아니면 써낼 수 없는 것이어서 픽션으로도 재현되기 힘든 유형의 인간. 순간순간 짓는 표정이나 배려있다고 반응 좋은 말과 행동도 이면에 같은 회로를 거친 것이다 보니 사람들이 로맨틱한 드라마의 배역보다도 느낌있고 입체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듯.
몇 화 출연하지 않았는데도 반응 좋은 포인트가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데 언급되지 않았던 장면 중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는 건 17화 데이트하러 가는 차안에서 전날 울었던 해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던 장면. 현규는 오래 만났던 사람이니 안 잊히는 거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해은에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하는데, 해은이 '시간?' 갸우뚱하면서 원래 바깥에서는 규민 잊고 되게 잘 살았다고 안 무안하게 늘어놓음. 그러니까 현규가 바로 원래는 괜찮았는데 여기 와서 다시 매일같이 마주하는 상황이 힘든 거구나, 로 정확하게 정정함. 보통은 그냥 그렇구나 지나가듯 넘어갈 만한 말인데 상대의 흘러가는 말을 듣고 자기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수정한 걸로 보였음. 해은은 규민에게 아직 미련이 강한 게 아니라 방송 포맷상의 감정적 압박을 받고 있는 거라고. 16화에서 첫번째 데이트 이후 했던 인터뷰 중에 해은 누나는 원래 밝은 사람인데 이 환경이 누나를 힘들게 만드는 거구나 생각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눈치가 빠르다고 화제였는데 둘째날 해은을 보고 바로 파악하기에는 지나치게 정확한 내용이고, 실제로는 이 시간 이후에 한 인터뷰였을 거라고 짐작함.
같은 맥락에서 18화 예고로 나왔던 진실 게임 질문, 규민이 다시 호감을 표시하면 어떨 것 같냐는 물음도 정말 궁금해서가 아니라 어느정도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 해은에게 감정을 자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임. 승부사스럽고 게임 재밌게 하는듯. 지금까지도 느끼는데 관찰력이 좋아서 상대의 감정을 보여지는 징후만으로 상대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편. 해은은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스타일이고.
현규가 만약 출연자 중에 취향인 사람이 딱히 없었더라면 첫날처럼 젠틀한 플러팅만 보여주다가 최종커플 성사돼도 현실커플로 안 이어졌을 것 같은데 해은에게 진심모드라 재미있는 장면이 더 나오는 듯. 적당히 선지키고 젠틀했어도 화제성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등장한 타이밍이나 프로그램 컨셉, 그동안 해은의 서사와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역대급 시즌을 만들어냄. 짠 거 아니냐는 말에는 현규가 방송에서 보이는 바이브를 대본받고 연기로라도 할 수 있는 일반인 출연자가 있다면 그 재능을 살려 배우를 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싶음.

-- 해은

현규 불꽃플러팅 이전까지 해은 탈규민길이 요원해 보인다고 말이 많던데 현규가 있었든 없었든 해은은 탈규민했을 거라고 봄.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간의 시간을 부정하는 상대를 계속 마주하는 괴로움까지도 남아있는 감정으로 착각했을 거라 짐작하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나아졌을 상태.
비슷한 이유로 현규와도 방송 이후 현실 커플이 되지는 못할 거라는 말이 많던데 나는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매칭되는 커플들 중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 압도적으로 높다고 봄. 규민은 남성 출연자 중 다른 사람에게 아예 끌리지 않던 상태에서 한 명을 매일 골라야 하는 상황에 계속 있었으니 고른 거고, 자신이 규민을 선택했다는 결과와 규민의 냉대가 다시 해은의 감정을 심화시켰다면(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방송에 의해 다소 작위적으로 형성된 감정선이라면) 현규와는 서로 이끌리는 게 보임.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과 솔직한 건 다른데 해은은 방송 의식 없이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고. 주어진 시간이 좀 짧긴 한데 현규 본인이 의지가 있다면 해은과 관계를 방송 바깥에서 이어나가는 건 사실 어려워 보이지 않음.
현규와의 첫 데이트부터 현규에 대해 인터뷰할 때 늘 규민의 언급이 빠져 있고 표정에서도 그게 드러나서 최종커플 투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했음. 그게 편집점이든 정말 그런 거였든.

-- 규민

16화까지 별로 나쁘게 보진 않았음. 인터뷰할 때든 사람을 대할 때든 늘 한두겹 필터 거쳐 말하고 방송을 가장 의식한다 정도. 그래서 오히려 해은의 마음을 마주할 때마다 카메라 앞에서 표정을 보란듯 찡그리고, 거들먹거리며 대놓고 싫었다 말하는 게 꽤 작위적이라고 느꼈음. 감정이 있는데 싫은 척한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젠틀하고 새 연애사업 잘 되어가고 무엇보다 전 애인의 구애를 거부하는 자신과 그렇게 비춰지는 모습에 취한 느낌. 이걸 연애 시절의 갑을관계가 뒤바뀐 상황에 대한 보상심리와 쾌감이라는 분석이 있던데 별로 동의하지 않음. 당사자 앞에서 담배피우다 발에 끼우던 거 보면 해은에 대한 존중도 감정도 남지 않은 건 맞고.
16화의 화법이 가스라이팅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17화는 가스라이팅이 맞음. 17화까지 봤으면 해은이 자기 큰 잘못으로 규민과 헤어졌고 지금도 미안함을 갖고 있다는 게 규민의 가스라이팅 결과라는 건 머리가 있으면 보이는 거고, 그 가스라이팅과 방송에서 해은을 향한 수동공격의 기저에는 컴플렉스가 있지 않나 싶음. 방송을 통해 인지도와 어떤 이미지를 가지려는 욕심이 꽤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전력으로 포장하고 피상적인 말만 해댄 것도 있고, 어느 정도는 해은과의 연애 도중인지 이후인지는 몰라도 본인의 성격 자체가 그런 방향이 되어간 결과일 거라고 생각. 해은이 상대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 만한 사람이 아니니 아마 이후 연애 상대거나 아니면 동성 관계의 영향일 거라고 짐작함.
17화 해은과 일대일 대화 좀 웃겼음. 규민은 지난 며칠간 나연의 마음이 확실히 정해진 걸 느꼈고 표를 항상 주던 해은마저 돌아설 기미가 보이자 자신이 0표받을 결말에 불안감을 느끼던 상태. 일대일 대화에서 규민이 의도한 건 오히려 해은에게 여지를 넌지시 내보이는 거였고 수동성 걷어내면 사실상의 메세지는 이거였음. 너에게 질투도 나고, 잘될 여지도 없지 않았는데 네 어제 행동으로 실망했다. 나와 정말 이어지고 싶으면 현규에게 흘리지 말고 처신 잘해라. 그러니까 본질은 희두가 나연에게 했던 말과 정말 비슷한데 차이점은 1) 현규에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안좋게 보인다는 뇌피셜로 충격요법을 가하면서 가스라이팅을 성립시키셨고, 2) 해은이 현규에게 느끼는 이끌림이 이미 너무 커서 규민의 말이 안 들어오는 상태였다는 것. 해은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일대일 대화에서 규민을 잡을 마음이 이미 없었음. 규민이 수동적으로 여지를 계속 주는데도 해은은 내가 너를 잡아도 너는 다시 돌아올 마음이 없겠지, 였나 그렇게 묻고 나서 규민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빨리 절대로 없겠지, 로 알아서 자문자답을 함. 다른 대답이 나오기를 무의식중에 피하려는 것처럼. 해은 같은 스타일은 자기 감정을 스스로가 정확히 모르니 언어적 표현보다 행동으로 파악하는 게 정확함.
그리고 규민이 해은을 통제하는 방식이 꽤 가학적이라고 느꼈음. 초반에 깔끔하게 둘 사이를 정리하지도 않으면서 나연과의 모습을 일부러 보이고 괴로워하게 만드는 것도 통제의 한 방식. 자신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프로그램 마지막까지 자신을 찍도록. 규민은 아마 그 그림을 원했을 거라고 생각.
커뮤니티에서는 소패니 뭐니 하던데 연애 초중반 분위기 보니까 처음부터 이런 느낌이었을지는 잘 모르겠고, 어쩌면 외부 요인으로 성격에 부정적 영향을 꽤 받은 듯. 가벼운 만남이든 호모소셜집단이든.

-- 나언

관찰자로서의 눈치는 여성 출연자 중 가장 좋은 것 같은데, 자신을 향한 남성의 감정에 대해서는 눈치가 상대적으로 둔한 편인 듯. 자신에게 꽤 직접적인 태이의 호감을 헷갈려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방어기제를 방송 앞에서 직설적으로 까발리는 걸 불편해하는 규민과는 딥한 대화를 나눴다고 착각하고.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르는 걸지도.

-- 지연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법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 말도 잘 못 거르고 가십 좋아하고. 지연이 태이를 향한 연민이나 연민하는 스스로에 취해서 무례한 말을 해도 태이가 유하게 넘기던 거 보면 이런 걸 집어서 지적해주는 사람이 아직까지 없었다는 생각이 듦. 태이가 왜 스스로를 이성적 상대로 전혀 고려하지 않는지 화가 지나면서도 느끼는 바가 없다는 것부터가 상대방에게 감정이 있을 때 그 감정에 취한 스스로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보이고, 희두가 자신에게 호감이 꽤 있었는데도 쟁취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X룸 갔다 와서 태이와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부터 크게 느꼈는데 본인은 솔직하게 자기 어필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감정과 자기 이야기만을 함. 사귀던 시절 자기가 태이를 훨씬 좋아했다고 떠벌리던 것도 이제는 어떤 느낌인지 알겠는게 그냥 당시 태이가 참아주는 관계였을 거라 생각. 그때는 성격이 달랐다고 하니 잘은 모르겠지만. 자기 바깥에서 바라보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애인이 아니더라도 깊은 관계는 힘들 듯.
눈치가 없는데 자기 눈치에 모종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 피곤한 스타일. 호의, 이성적 관심, 무관심, 거부감, 완곡한 거절, 악의를 다 잘 감지하지 못하는데 감지했다고 착각하니 계속 참사가 벌어짐. 해은, 나연, 나언, 태이, 희두, 현규와의 상호작용에서 전부.
넌 네 생각만큼 솔직하지 못하고 입이 가볍고 눈치가 많이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길 바람.

-- 희두

딱히 17화에서 나연에게 못할말 한지는 모르겠고, 나연만큼 재결합에 진심도 아니고, 지금까지도 그래왔다는 건 보임. 제주도 와서 나연과 싸울 때 규민과 데이트 타령하면서 말이 앞뒤가 안맞다고 말하던 것도 사실 그런 나연에 정말로 화난 게 아니라, 재결합 의지가 강하지 않고 지연에게도 호감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재결합을 원한다는 전제로 반복되는 싸움 상황이 불필요하고 지겹게 느껴지고, 자신이 당장 답을 내줄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니 상대가 자존심을 부리고 자신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나연의 감정표현에 대한 대답을 유보하고 싶어하는 걸로 보였음. 17화에서 나연이 생각보다 빨리 스탠스를 정하고 자신에게 직진하니 당황스러워하고 그때조차 얼버무리는 거 보고 그럴 것 같았다 싶었음. 이쪽이 오히려 최종커플 이어져도 현실로 이어질지 잘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로는 나연이 감정의 깊이가 훨씬 크고 희두는 둘 사이에서 애매하게 저울질하다가 굳이 선택하라면 나연을 고를 것 같은 느낌.

-- 나연

나연은 장문의 분석글 괜찮은거 꽤 많던데 인상평 생략. 초반에 해은 등장할 때 내가 여기서 누군가를 질투하게 된다면 이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는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아 보이는 것보다 예민하고 자기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음.
17화에서 희두에게 직진하다가 내가 놓으면 끊어질 관계라는 인터뷰에서 번아웃 타이밍인가 싶던데, 희두의 극적인 태도 변화라도 있지 않는 한 방송 끝나고 이쪽이 지쳐서 놓아버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 이 방송은 어디까지나 자기 전애인 낀 남출연자 네다섯명 중에 한명을 무조건 매일 선택해야 하는 프로그램이고 그 포맷 안에서는 나연 입장에서 희두가 베스트 선택지라는 게 내가 봐도 꽤 당연해 보이는데, 이 포맷을 벗어나서까지 유효할지는 잘 모르겠음. 희두가 딱히 애쓸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나연이 애초에 어느정도 희두의 그 변덕스러움에 끌려서 유지되는 관계이긴 한듯.

-- 태이

호감인 상대에게 신나서 거리 잘 못 재고 들이대는듯. 자기가 티키타카 되는 스타일을 좋아하고 그렇게 유도할 뿐인데 혼자 친하고 가깝고 편하다고 착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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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L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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